"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던가. 사업하는 사람 치고 괴테의 이 말에 무릎을 치지 않을 자 없을 것이다.
고층 오피스 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선 구로디지털단지. 지방대 졸업 후 상경해 구로에서 첫 직장을 잡은 뒤 산전수전은 물론, 공중전까지 겪은 이 남자의 입에서 방언처럼 이런 말이 터져나왔다. "코스닥 상장 기업인들 아니 여기에서 사업하는 사람 치고 한강에 가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요. 저 역시 통장에 30억원 빚만 남았을 때 자살할 생각을 했었죠."
지금은 시가총액 2400억원의 기업을 일군 강삼권 포인트모바일 대표(56)다. 지난해 2월부터 벤처기업협회장도 역임하고 있다. 회사가 위치한 구로 갑을그레이트밸리에서 만난 강 대표는 막 스페인에서 귀국한 차였다. 지난 3일 바로셀로나에서 폐막한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2'에 다녀왔다. "올 초 'CES'도 그렇고 MWC에도 우리나라 기업이 참 많이 참여했더군요. 코로나19 영향인지 중국 측은 대기업 빼고는 거의 오지 않았어요. 5G를 넘어 6G 얘기가 많았고 메타버스와 증강현실이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습니다."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그는 원광대 전자공학과 졸업 후 당시 구로 3대 정보기술(IT) 기업인 대륭정밀에 입사했다. 처음부터 회사를 차리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엔지니어 배경에 영어가 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1순위로 채용됐어요. 입사 후 해외 마케팅에 지원했지요. 중소기업은 해외지사가 없어 SK상사와 영업을 같이했어요. 미국 교통경찰이 과속 단속을 위해 사용하는 속도측정기의 레이더를 감지하면 경보를 울리는 레이더 디텍터가 주력 상품이었어요. 판매가 잘되다 보니 SK 담당 대리가 사업을 같이하자고 했지요."
동업을 결심하고 퇴사한 건 1995년, 입사 5년 차였다. 이 회사가 백금티앤에이다. 4명이 공동창업했고 사업은 성공리에 안착했다. 하지만 창업자들끼리 지분 갈등이 불거지면서 4년 만에 지분을 6억8000만원에 팔고 그 돈에 은행 대출을 받아 직접 회사를 차린다. 셋톱박스 파이닉스였다. 순항하던 회사는 조직에 생각지도 않았던 내분이 발생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망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망하는 건 순식간에 벌어지는 게 아니라 단계적이라는 사실을요. 신호가 올 때 빨리 접었어야 했는데 미련을 갖고 끝까지 간 거죠. 결국 30억원 빚이 남게 됐어요. 정신이 피폐해지고 희망이 없었는데 아내가 잡아줬지요. 남은 현금 1억원을 채권자들에게 조금씩이라도 갚고 나머지는 재기해서 꼭 갚는다고 약속하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죠."
2006년 산업용 개인용정보단말기(PDA)를 생산하는 포인트모바일을 창업한다.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2020년 아마존과 8년간 2억달러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코스닥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아마존 구매금액에 상응하는 신주인수권(BW)을 부여해 아마존이 이를 행사하면 단숨에 포인트모바일 2대 주주가 된다.
2019년 30억원 가까이 됐던 아마존 매출은 지난해 227억원을 찍었다. 전체 매출 790억원 가운데 29%에 해당한다. 올해는 600억원으로 추산돼 전체 매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전망이다.
"안전한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 BW를 달라는 아마존 제안을 전격 받아들이게 됐어요. 물류센터에 공급하는 PDA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블릿PC, IP 카메라, 모바일 프린터 등 추가적인 제품을 더 가져올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아마존이 필요한 모든 IT 주변기기를 우리가 공급하려고 합니다. 이러다가 제 생애 다 끝날 수도 있어요. 이것만 하고 죽어도 감사하지요."
아마존 사업부는 이커머스와 엔터테인먼트, 클라우드, 위성사업으로 나뉜다. "아마존 전체가 한국에 상륙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또 아마존이 한국 교육이나 IT 산업에 기부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젠 성공한 사업가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몇 번의 배신과 시련을 겪어서일까. 그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마저도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은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을 도와줄 때도 원칙이 있다. "쌀독이 탈탈 털린 지 한 달 뒤에나 도와줘야 합니다. 바닥을 내려갈 때 도와주면 다 허공에 날려요. 저도 그랬지만 미련이 생겨서 계속 붙잡고 있으니까요. 빨리 결단을 내려서 손실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대부분이 다 그러지 못합니다."
이번 출장길에 물류대란을 실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한복판에 러시아 하늘길이 막혀 항공편이 취소됐지요. 홍콩에서 미국으로 가는 물류비용이 300% 올랐다고 합니다. 코로나19에 공급망 문제, 러시아발 물류 대란까지 복합문제가 불거졌지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1년6개월 치 주문을 받아라. 6개월 치 재고를 가져가자. 회사에 쟁여놓고 하자. 유가 급등에 환율 상승, 금리 인상, 인건비 상승 등 이젠 돈이 없는 회사는 살아남기 어렵게 됐어요."
▶▶ 강삼권 대표는…
△1966년 충남 서천 출생 △1990년 원광대 전자공학과 졸업 △1990년 12월~1995년 9월 대륭정밀 △1995년 10월~1999년 10월 백금티앤에이 이사(공동 창업) △1999년 11월~2005년 3월 파이닉스시스템 대표 △2006년 8월~포인트모바일 대표 △2021년 2월~벤처기업협회장
[이향휘 기자 / 사진 =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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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협회장 강삼권 포인트모바일 대표 인터뷰
IT기업 퇴사하고 공동 창업
지분 매각·재창업·실패 반복
"망하는 건 순식간 아닌 단계적
미련 갖고 버티다 30억 빚 생겨"
절치부심 PDA 사업으로 재도전
2020년 아마존 2억弗 공급 `잭팟`
아마존, BW 행사 땐 2대주주로
실패 교훈 삼아 위기 대비 철저
고유가·러시아발 물류 대란에
6개월치 재고 쌓아두고 있어
고층 오피스 빌딩이 빽빽하게 들어선 구로디지털단지. 지방대 졸업 후 상경해 구로에서 첫 직장을 잡은 뒤 산전수전은 물론, 공중전까지 겪은 이 남자의 입에서 방언처럼 이런 말이 터져나왔다. "코스닥 상장 기업인들 아니 여기에서 사업하는 사람 치고 한강에 가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요. 저 역시 통장에 30억원 빚만 남았을 때 자살할 생각을 했었죠."
지금은 시가총액 2400억원의 기업을 일군 강삼권 포인트모바일 대표(56)다. 지난해 2월부터 벤처기업협회장도 역임하고 있다. 회사가 위치한 구로 갑을그레이트밸리에서 만난 강 대표는 막 스페인에서 귀국한 차였다. 지난 3일 바로셀로나에서 폐막한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2'에 다녀왔다. "올 초 'CES'도 그렇고 MWC에도 우리나라 기업이 참 많이 참여했더군요. 코로나19 영향인지 중국 측은 대기업 빼고는 거의 오지 않았어요. 5G를 넘어 6G 얘기가 많았고 메타버스와 증강현실이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습니다."
"엔지니어 배경에 영어가 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1순위로 채용됐어요. 입사 후 해외 마케팅에 지원했지요. 중소기업은 해외지사가 없어 SK상사와 영업을 같이했어요. 미국 교통경찰이 과속 단속을 위해 사용하는 속도측정기의 레이더를 감지하면 경보를 울리는 레이더 디텍터가 주력 상품이었어요. 판매가 잘되다 보니 SK 담당 대리가 사업을 같이하자고 했지요."
동업을 결심하고 퇴사한 건 1995년, 입사 5년 차였다. 이 회사가 백금티앤에이다. 4명이 공동창업했고 사업은 성공리에 안착했다. 하지만 창업자들끼리 지분 갈등이 불거지면서 4년 만에 지분을 6억8000만원에 팔고 그 돈에 은행 대출을 받아 직접 회사를 차린다. 셋톱박스 파이닉스였다. 순항하던 회사는 조직에 생각지도 않았던 내분이 발생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망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망하는 건 순식간에 벌어지는 게 아니라 단계적이라는 사실을요. 신호가 올 때 빨리 접었어야 했는데 미련을 갖고 끝까지 간 거죠. 결국 30억원 빚이 남게 됐어요. 정신이 피폐해지고 희망이 없었는데 아내가 잡아줬지요. 남은 현금 1억원을 채권자들에게 조금씩이라도 갚고 나머지는 재기해서 꼭 갚는다고 약속하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죠."
2006년 산업용 개인용정보단말기(PDA)를 생산하는 포인트모바일을 창업한다.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2020년 아마존과 8년간 2억달러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코스닥에 화려하게 데뷔한다. 아마존 구매금액에 상응하는 신주인수권(BW)을 부여해 아마존이 이를 행사하면 단숨에 포인트모바일 2대 주주가 된다.
2019년 30억원 가까이 됐던 아마존 매출은 지난해 227억원을 찍었다. 전체 매출 790억원 가운데 29%에 해당한다. 올해는 600억원으로 추산돼 전체 매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전망이다.
"안전한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 BW를 달라는 아마존 제안을 전격 받아들이게 됐어요. 물류센터에 공급하는 PDA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블릿PC, IP 카메라, 모바일 프린터 등 추가적인 제품을 더 가져올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아마존이 필요한 모든 IT 주변기기를 우리가 공급하려고 합니다. 이러다가 제 생애 다 끝날 수도 있어요. 이것만 하고 죽어도 감사하지요."
아마존 사업부는 이커머스와 엔터테인먼트, 클라우드, 위성사업으로 나뉜다. "아마존 전체가 한국에 상륙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또 아마존이 한국 교육이나 IT 산업에 기부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젠 성공한 사업가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몇 번의 배신과 시련을 겪어서일까. 그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마저도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은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을 도와줄 때도 원칙이 있다. "쌀독이 탈탈 털린 지 한 달 뒤에나 도와줘야 합니다. 바닥을 내려갈 때 도와주면 다 허공에 날려요. 저도 그랬지만 미련이 생겨서 계속 붙잡고 있으니까요. 빨리 결단을 내려서 손실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대부분이 다 그러지 못합니다."
이번 출장길에 물류대란을 실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한복판에 러시아 하늘길이 막혀 항공편이 취소됐지요. 홍콩에서 미국으로 가는 물류비용이 300% 올랐다고 합니다. 코로나19에 공급망 문제, 러시아발 물류 대란까지 복합문제가 불거졌지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1년6개월 치 주문을 받아라. 6개월 치 재고를 가져가자. 회사에 쟁여놓고 하자. 유가 급등에 환율 상승, 금리 인상, 인건비 상승 등 이젠 돈이 없는 회사는 살아남기 어렵게 됐어요."
▶▶ 강삼권 대표는…
△1966년 충남 서천 출생 △1990년 원광대 전자공학과 졸업 △1990년 12월~1995년 9월 대륭정밀 △1995년 10월~1999년 10월 백금티앤에이 이사(공동 창업) △1999년 11월~2005년 3월 파이닉스시스템 대표 △2006년 8월~포인트모바일 대표 △2021년 2월~벤처기업협회장
[이향휘 기자 / 사진 =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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