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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창업 한번 해봐"…스타트업 아버지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인터뷰]

관리자
2022-05-01
조회수 605


[Weekend Interview] `n차 창업가` `스타트업 아버지`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 황순민 기자
  • 입력 : 2022.04.29 17:04:46   수정 : 2022.04.30 07: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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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5개 회사를 창업해 성공으로 이끈 `연쇄 창업가`이자 한국 스타트업계 `멘토`로 통한다. 권 대표가 최근 서울 서초구 개인 사무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제공 = 프라이머]사진설명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5개 회사를 창업해 성공으로 이끈 `연쇄 창업가`이자 한국 스타트업계 `멘토`로 통한다. 권 대표가 최근 서울 서초구 개인 사무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제공 = 프라이머]
바야흐로 창업가 전성시대다. 팬데믹은 디지털전환(DT) 등 변화를 더 빠른 속도로 앞당겼다. 이를 기회로 삼은 스타트업들도 혜성처럼 나타나 인재와 자본을 무서운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다. 특히 '파괴적 혁신'을 무기로 산업 간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정보기술(IT)뿐 아니라 유통·금융·엔터테인먼트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시장 판도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과거 스타트업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유니콘'을 넘어 기업가치가 10조원에 육박하는 '데카콘' 기업도 국내에서 속속 탄생하고 있다.

최근 매일경제신문이 만난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5개 회사를 세운 국내에서는 희귀한 'n차(연쇄) 창업가'다. 특히 창업 초기 회사를 대상으로 한 육성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창업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스타트업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1990년대 후반 국내 최초 결제시스템 이니시스와 보안회사 이니텍을 설립해 회사를 키워냈다. 두 회사를 모두 코스닥에 상장시켰고, 2008년 3300억원에 매각했다. 당시 국내 스타트업 투자회수금 중 최고 금액이었다.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성공한 그는 후배 창업가 양성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가 2010년 설립한 '프라이머'는 국내 최초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육성기관)다. 초기 스타트업에 창업 자금을 지원하고 경영까지 도와주는 회사다. 스타일쉐어, 아이디어스, 번개장터, 라엘, 세탁특공대 등 200곳이 넘는 스타트업이 그의 손을 거쳐 빛을 봤다. 도전하는 이에게 무한한 기회가 열려 있는 시대다. "인생에 한 번은 무조건 창업하라"고 조언하는 그를 만났다.

―안정적인 직장이었던 데이콤을 박차고 나와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첫 직장은 기아자동차 전산실이었다. 컴퓨터에 관심이 생겨 1990년 당시 제일 잘나가던 IT 회사인 데이콤에 입사했다. 1997년까지 데이콤 종합연구소에서 10년 동안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암호기술을 통해 경제적인 가상세계를 도입하는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회사에서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큰 회사들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당시 데이콤도 그랬다. 스타트업에 기회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업에 나설 당시 큰아이가 네 살이었고 작은아이는 배 속에 있을 때였다. 두려움도 있고 가족들도 조심스러웠지만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창업했다. 퇴직금과 전세금을 모으고 데이콤에서 받은 우리사주를 팔아 종잣돈 약 1억원을 만들었다. 그렇게 1997년 보안업체 이니텍을, 1998년 전자지불업체 이니시스를 설립했다.

―자신만의 원칙과 기준이 창업가에게 용기를 준다는 것인가.

▷그렇다. 내 경우 5년이라는 기준을 정했다. 첫째는 '큰 빚을 지지 않는다'였다. 다시 취업해서 2~3년간 일하면 갚을 수 있을 정도로 부채의 임계치를 정해놓았다. 또 한 가지는 당장 회사 매출이 나와도 창업 당시 꿈꿨던 제품과 서비스에서 매출이 50% 이상 나오지 않으면 관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용역으로 돈을 벌지만, 2년 내로 내가 가진 비전이 실현될 수 있는지 실험하기로 했다. 1997년 IMF 위기가 터졌지만 두 가지 조건을 어기지는 않았다. 내가 세운 기준을 모두 충족했기 때문에 사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1998년에 받은 엔젤투자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했다. '적자는 보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차근차근 조직 규모를 키워나간 것도 주효했다. 물론 배경이 엔지니어라는 것도 장점이었다. 적어도 굶어 죽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이니텍과 이니시스 모두 코스닥에 상장했고,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

▷사업이 잘되기 시작하면서 소위 말해 '업'됐던 것 같다. 대부분의 창업가가 빠지는 함정이다. 저는 이를 '성공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이땐 내 손이 '미다스의 손'처럼 느껴졌다. 이것저것에 투자하고 사업을 벌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벌인 일들이 이니텍과 이니시스의 다음 성장에 짐이 됐다. 이 때문에 고생도 좀 했다.

―어렵게 키운 회사를 모두 매각한 이유는.

▷사실 저는 회사가 그렇게 커질지 몰랐다. 매각할 때 자회사까지 하면 직원 수가 800명을 넘었다. 당시 기준으로 매출 1000억원에 직원 1000명이 넘으면 대기업으로 분류하곤 했다. 곧 대기업이 될 상황이었다. '내가 대기업을 경영하려고 창업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보수적인 사람이라 부채 경영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회사가 커지니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나는 약팀을 강팀으로 만드는 데 능한 휘스 히딩크 감독 같은 스타일이지, 강팀을 맡아 우승시키는 감독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선 국내 최초의 창업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를 설립했다.

▷13년 전 회사 매각과 함께 저는 은퇴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돈을 버는 일에 내 시간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했다. 돈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것이 내 경험을 통해 후배 창업가를 돕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0년 프라이머를 설립했다. 이택경(다음 공동 창업자), 이재웅(다음 창업자), 장병규(네오위즈 창업자) 대표 등과 펀드를 조성했다. 프라이머는 선배 창업가가 후배 창업가를 돕는다는 것이 모토다. 초기 투자뿐만 아니라 경영에도 도움을 준다. 적어도 6개월간은 2주에 한 번씩 만나 공동 창업자 수준으로 함께 치열하게 고민한다. 스타일쉐어, 번개장터, 아이디어스, 숨고, 세탁특공대 같은 스타트업이 나왔다. 프라이머 출신 창업가가 자리를 잡고, 다시 후배 창업가를 돕는 선순환 모델도 만들었다.

―유망한 창업자를 선별하는 기준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겸손함'이다. 겸손한 척과 진짜 겸손은 다르다. 마인드가 겸손한 것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열린 마음이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다. 스타트업 중에 첫 번째 성공 증후군에 빠져 망한 회사가 많다. 겸손하지 않은 창업가들은 자신만의 '자아'에 갇혀버린다. 한편으로는 심지가 굳은 사람이다. 창업이라는 어려운 길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마음의 단단함이 중요하다. 사업은 장거리 경주와 같다. 심지가 약하면 바람이 불 때 무너져 버린다. 사업 역량은 길게 보고 배우면 된다. 프라이머는 창업자의 나이나 학력 등 배경은 보지 않는다. 오직 사람과 비즈니스 모델에 6대4 비중으로 집중한다.

―요즘 해외에서 창업하는 사례가 줄고 있다.

▷영상 채팅 애플리케이션(앱) '아자르' 사례를 보자. 토종 한국 스타트업이 해외에서 잘나간다. 당근마켓도 해외 시장을 치열하게 공략 중이고, 잘되고 있다. 창업 초기부터 세계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은 필요하다. 다만 해외에서 반드시 창업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제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젠 한국에서 창업해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럴 만한 국력이 된다. 이미 여러 스타트업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요즘 뜨고 있는 '웹3.0'은 어떻게 보고 있나.

▷1994년 월드와이드웹이 전 세계에 처음 등장했을 때 한국에서 이에 관심을 가진 이가 20명 남짓이었던 것 같다. 이들과 함께 월드와이드웹 포럼을 만들어 연구하기도 했다. 이때 나온 웹이 완전히 자리 잡는 데 30년이 걸렸다. 웹3.0은 월드와이드웹의 진화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웹3.0에 대해 일치되는 정의가 없고, 아직은 조금 이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의 역사로 보면 탈중앙화자율조직(DAO)이나 메타버스 등을 웹3.0 분야로 볼 수 있는데, 이 둘이 웹처럼 세상을 보편적으로 바꿀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레미제라블에서 프랑스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진짜 혁명은 그로부터 70년 뒤에 일어났다. 탈중앙화를 중심으로 한 웹3.0이 결국 온다고는 생각하지만, 부작용 등을 거쳐 기술의 반작용을 덜어내고 사회 시스템으로 들어오기까지는 투명성 등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메타버스, 블록체인 거품론도 상당하다.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했는지 드러난다. 워런 버핏이 한 말이다. 사업은 결국 본질적 가치다. 창업자가 본질적 가치를 어떻게 새롭고 이로운 방향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기업의 비전이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한 사업은 결국 밑천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새 정부 스타트업 지원 어떻게 해야 할까.

▷스타트업 지원과 관련해선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부가 정권이 바뀌는 것에 관계없이 잘해왔다. 정권이 바뀌어도 기조가 바뀌지는 않았다. 지금 하던 대로만 꾸준히 하면 굉장히 큰 기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규제 완화는 필요하고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2030세대에게 창업과 관련해 조언한다면.

▷창업은 '무조건 하라'고 권하고 싶다. 창업할 생각이 없어도 생각을 바꾸고 시도하길 권한다. 젊었을 때 창업한 경험이 우리를 엄청나게 성장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빚지지 않는 범위에서 일정 기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대학에서 창업을 '전공필수과목'으로 정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봤으면 좋겠다.

―꿈이 무엇인가.

▷다시 창업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가들이 서로 돕는 선순환 민간 생태계를 구축하고 싶다.


▶▶ 권도균 대표는…

△1963년생 △기아자동차 전산실 △1990~1997년 데이콤 △1997년 이니텍 대표 △1998년 이니시스 대표 △2000년 KMPS 대표, 한국버추얼페이먼트 대표, 한국인터넷빌링 대표 △2010년~현재 프라이머 대표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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