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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업무 다른방법, 이것이 경쟁력입니다.

초음파 센서로 한국인이 최애하는 삼겹살의 맛 찾았다 [스페셜리포트]

관리자
2022-05-02
조회수 823


  • 정혁훈 기자
  • 입력 : 2022.05.01 16:10:25   수정 : 2022.05.01 21: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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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ECIAL REPORT : 축산의 미래 보여준 도드람양돈농협 ◆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에 위치한 도드람양돈농협 안성도축장(도드람엘피씨공사). 전국 양돈 농가에서 트럭에 실려 올라온 돼지가 최첨단 시설에서 도축되고 있다. 하루 3000마리분 돼지고기가 생산되는 곳이다. 말이 도축장이지 안을 들여다보면 제조공장처럼 느껴진다. 여러 첨단 시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오토폼(AutoFom)'이라고 불리는 대형 초음파 기기다. 돼지가 부분육으로 절단되기 전에 이곳을 통과하면 초음파를 통해 전신의 근육과 지방을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다. 16개의 초음파 센서가 몸체를 5㎜ 간격으로 측정한다. 센서별 수집 가능한 데이터는 200개. 돼지 1마리당 총 3200개 데이터를 측정하는 셈이다.

축산용 설비인 오토폼은 16개 초음파 센서를 통해 돼지 도체를 5㎜ 간격으로 스캔해 지방함량, 살코기 비율, 부위별 무게 등의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다.사진설명축산용 설비인 오토폼은 16개 초음파 센서를 통해 돼지 도체를 5㎜ 간격으로 스캔해 지방함량, 살코기 비율, 부위별 무게 등의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다.
이 오토폼 기기를 이용하면 자르지 않고도 돼지고기 품질을 확인할 수 있다. 돼지 등급 판정에 가장 중요한 등지방 두께는 물론, 살코기와 지방의 비율, 삼겹살의 근간지방 비율, 상품화할 수 있는 주요 부위별 무게 등이 자동으로 측정된다.

도드람은 2013년에 이 기기를 들여왔지만 유럽에서 개발된 기기이다 보니 그대로 사용하는 데 애로가 많았다. 유럽은 돼지고기를 어깨(전지), 등심, 옆구리·배, 뒷다리 등 크게 4개 부위로 분할하지만 우리나라는 목심, 갈비, 앞다리, 등심, 안심, 삼겹살, 뒷다리 등 7개 부위로 나누기 때문이다. 발골과 정형 방법의 차이 때문에 내부 프로그램 산식은 우리 실정에 맞게 자체 개발이 필요했다.

도드람은 기기 도입 1년 뒤부터 오토폼 데이터를 한국형 돼지고기 부위에 맞추는 작업에 착수했다. 돼지 한 마리를 오토폼으로 측정한 뒤 대분할 부위별로 살코기와 지방을 일일이 칼로 발라내 무게를 재면서 오토폼 산식을 조정해가는 방식이었다. 돼지 한 마리를 이렇게 작업하는 데 하루가 넘게 걸릴 때도 있었다. 결국 돼지 162마리를 일일이 해체하고 분석한 뒤에야 한국형 산식이 개발됐다. 꼬박 2년이 걸렸다.

◆ 초음파로 쌓은 빅데이터에 AI 접목

요즘은 오토폼 덕분에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한국인 '최애(最愛)' 부위인 삼겹살을 고객 맞춤형으로 상품화하는 게 가능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대형 할인점으로 납품되는 '슬림 삼겹살'이다. 근간지방 비율이 낮은 삼겹살을 따로 판매하는 것이다.

근간지방은 살코기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지방을 뜻한다. 이 비율이 10~11%로 낮은 저지방 삼겹살을 선호하는 여성 고객을 타깃으로 한 상품이다. 사실 저지방 삼겹살은 일반적으로 선호도가 떨어진다. 삼겹살 특유의 고소한 맛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림'을 선호하는 고객층이 뚜렷하게 생겨나면서 오히려 요즘은 일반 삼겹살보다 비싸게 팔린다.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13~15%의 근간지방 비율 삼겹살만 모아 판매하는 '으뜸 삼겹살'도 인기다. 예전 같으면 돼지고기를 샀다가 지방비율이 너무 낮거나 높아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들이 있었지만 이젠 정확한 근간지방 비율을 측정해 상품화하다 보니 고객 만족도가 높다. 농장주들도 과거에는 등지방 두께와 육색으로 판정하는 등급(1+등급, 1등급, 2등급, 등외)에 따라서만 장려금을 받았는데 요즘은 고객 선호도가 높은 근간지방 비율의 삼겹살을 많이 출하할수록 더 많은 장려금을 받는다. 자연스레 양돈 농가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돼지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더 노력한다.

도드람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금까지 오토폼으로 축적해온 빅데이터에 인공지능(AI)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소비자를 근간지방 비율 선호도별로 분류해 맞춤형 돼지고기 상품을 다양하게 공급하거나 시기별로 경락단가를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연중 돼지고기에 대한 수요 변화나 특정한 사회 이슈가 발생했을 때 나타날 돼지고기 가격 변화도 예측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도드람은 충북대 빅데이터연구소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 13명이 시작해 30년 만에 3.5조원까지 키워

웬만한 식품 대기업 못지않게 혁신을 이뤄가고 있는 도드람양돈농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품목조합이다. 해외 농업 선진국에서 성공한 협동조합 중에는 품목조합이 많다. 미국 선키스트(오렌지), 뉴질랜드 제스프리(키위), 덴마크 대니시크라운(육류) 등이 품목조합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국 1100여 개 농업협동조합 중 93%가 지역조합이다. 더구나 조합 대부분이 농업 자체와 관련된 경제사업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사업을 통해 손실을 만회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1990년 경기 이천 지역 양돈인 13명으로 시작해 국내 돼지고기 시장에서 6%를 점유하고 있는 도드람양돈농협은 다르다. 작년 총 사업 규모 3조4716억원 중 경제사업이 1조8508억원, 금융사업은 1조6208억원이었다. 경제사업 비중이 더 클 뿐만 아니라 148억원의 경상이익 중 절반 가까이가 경제사업에서 나왔다. 올해 550여 조합원에게 돌아간 배당금만 127억원에 달했다.

도드람의 이런 경쟁력은 조합원들의 협력 플레이에서 나온다. 우선 통일된 종돈을 사용한다. 도드람 조합 농장들은 다비육종에서 생산하는 LYD 3원 교잡종 종돈만을 사용한다. 랜드레이스(L)·요크셔(Y)·듀록(D) 품종의 교잡종만을 사용하다 보니 일관된 맛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사료 역시 자체 연구소에서 검증된 것만 쓴다. 특히 출하 전 마지막 단계에서 투입하는 후기 사료는 돼지고기 품질을 결정하는 데 절대적이다. 정연재 도드람양돈서비스 사료연구개발부장은 "돼지가 110㎏ 정도에서 출하된다고 할 때 무게 85㎏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살코기와 지방 비율이 적절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저단백질 사료를 먹이게 된다"며 "최근엔 탄소 배출을 감안해 질소 함량을 낮게 유지하는 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도축장과 가공공장, 유통과정에서의 온도 유지도 도드람의 경쟁력 중 하나다. 도축이 끝난 돼지는 영하 8~25도로 유지되는 급랭 터널에서 90분간 머물렀다가 영하 5도 예랭실에서 24시간 머문 뒤에 가공공장으로 이동한다. 가공공장 내부는 영상 15도에서 유지되고, 가공 후 포장된 부위별 고기는 영상 2~5도 냉장차를 이용해 유통업체로 이동한다. 소비자 손에 도달할 때까지 최적의 온도에서 콜드체인이 유지된다.

◆ 3년 전 300억원 적자 위기 고통 분담으로 극복

박광욱 조합장사진설명박광욱 조합장
도드람양돈농협에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불과 3년 전인 2019년 조합 창립 이래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2019년 3월 새로 취임한 박광욱 조합장은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조합장에 취임하니 암담했습니다. 조합장으로 온 게 아니라 불속으로 뛰어든 것 같았죠. 매월 업무보고를 받는데, 한 달에 20억원 넘게 적자 결산이 올라왔습니다. 그대로 가다가는 연간 적자액이 300억원에 달할 판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조합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박 조합장은 태스크포스(전담조직)를 구성하고 적자 원인부터 찾았다. 가장 큰 문제는 계속 쌓이는 재고였다. 2018년에 김제도축공장(김제에프엠씨)에 새로 지은 부산물가공공장이 화근이었다. 공장 가동률을 무리하게 높이려다 보니 시장 수요보다 훨씬 많은 돼지를 도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재고조사를 해보니 돼지고기 재고가 1만3000t에 달했다. 24만5000마리분에 해당하는 물량이었다. 평소 월 도축 물량이 8만마리였으니 3개월 치를 냉장고에 쌓아두고 있는 것이었다. 금액으로는 800억원어치였다.

극약처방이 필요했다. 박 조합장은 김제도축공장 가동 중단을 지시하고 손실이 나도 좋으니 재고부터 정리할 것을 지시했다. 동시에 조합원 고통 분담을 호소했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조합원들이 사료를 정상 가격보다 27% 비싸게 매입하기로 했다. 또 하나는 돼지 출하 가격을 마리당 8700원씩 낮춰 받기로 했다. 사료는 비싸게 팔고, 돼지는 싸게 사들여 조합이 확보한 금액이 140억원에 달했다. 한마디로 조합원 550여 명이 140억원을 갹출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돼지고기 재고가 그해 말까지 5000t으로 줄었다. 그대로 갔으면 300억원 넘는 적자가 예상됐지만 결국 2019년 131억원 경상적자로 막았다. 박 조합장은 "강력한 구조조정 탓에 조합원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에도 2019년에 탈퇴한 조합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며 "도드람의 저력에 우리 스스로 놀랐다"고 말했다. 도드람은 바로 이듬해인 2020년 96억원 경상흑자로 돌아섰다.

◆ '이베리코' 잡을 프리미엄 돼지고기 출시

도드람의 위기 탈출에는 박 조합장의 독특한 이력도 한몫했다. 구조조정에 성공한 대표적인 대기업그룹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두산개발이 소유하고 있던 안면도 농장에서 1978년부터 1991년 까지 일했다. 한우 3000마리와 돼지 1만5000마리를 기르던 곳이었다. 1991년 두산이 농장을 접을 때 본인 청으로 퇴직금 대신 모돈 100마리를 회사에서 받아 양돈농장을 시작했다. 지금은 1만마리로 늘었다. 안면도에서 유명한 그의 농장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농협중앙회 3개 기관에서 청정축산 환경대상을 받기도 했다.

도드람은 이제 새로운 프리미엄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 도드람이 사용해온 LYD 삼원 교잡종에 더해 YBD 교잡종을 상품화하는 일이다. YBD는 요크셔(Y)·버크셔(B)·듀록(D)을 교잡한 품종으로 LYD에 비해 생산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고기 맛은 더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품종이다. 담백하고 고소한 게 특징이다. 미쉐린 가이드 식당으로 유명한 서울 중구 약수동의 금돼지식당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품종이다.

도드람은 우선 7개 농장에서 3만5000마리 규모로 이 품종의 돼지고기를 기르고 있다. 일반 돼지고기가 180일간 110㎏까지 키우는 반면 이 품종은 200일간 120㎏까지 키운다는 복안이다. 박 조합장은 "소비자 입맛이 고급화되면서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 않느냐"며 "이런 트렌드 변화에 맞추기 위해 2년 전부터 프리미엄 돼지고기 품종을 준비해왔고 조만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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